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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ter Sweet Symphony

배우 박희순의 수많은 얼굴.

다크 그린 레더 재킷 Bottega Veneta.

의외로 화보 촬영을 즐기는 것 같더라.

재미있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못해보는 것들을 화보에서 해봐서 좋다.

팬들 사이에서 셀카에 대한 말이 많던데.

직업이 배우니 사진 찍힐 일은 많은데, 셀카를 찍는 건 잘 못 한다. 어디 놀러 가도 와이프나 나나 사진 찍
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배경만 찍는다.(웃음)

요즘 그야말로 토해내듯 작품을 한다. 끊임없이 작품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분명 있을 텐데. 맡은 캐릭터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 <트롤리>라는 작품이 여러모로 익숙지 않아 굉장히 힘들다.

<트롤리>가 12월 방영이다. ‘미스터리 딜레마 멜로’ 장르라고 소개하던데, 듣기만 해도 감정선이 꽤 복잡할 것 같다.

그렇다.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것도 어려운데, 감정선까지 복잡하니 약간 우울증이 올 정도로 힘
들다. 평소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하는데.

국회의원 역할을 맡았더라. 정치인 역할은 처음이지 않나?

맞다. ‘남중도’라는 캐릭터인데, 애처가이면서 밖에서 일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하는,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런 인물이다.

잘은 모르지만, 인간 박희순과 흡사해 보인다.

봉사는 별로 안 했다.(웃음) 그 점 빼고는.

캐릭터를 설정하는 과정이 치밀한 것 같더라. <모범가족>의 김진우 감독은 “첫 촬영 때 이미 (박희순 연기에)감탄했다”며 “광철 역할을 어떻게 하겠다는 걸 갖고 있어서 촬영이 수월했다”는 말도 했던데.

‘남중도’는 롤모델을 둘 수가 없었다. 이중 삼중의 미스터리가 있기 때문에 ‘그냥 인간 박희순에서 출발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복잡한 감정과 스토리를 풀어가는 데 내 감정을 많이 차용했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식으로 이입을 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더 힘든 것일 수도 있고.

살도 많이 빠진 것 같다.

<마이 네임> 촬영할 때가 73kg이었고, 지금 64kg이니 많이 빠졌다. 평소 70kg을 유지한다. 캐릭터를 받고 2~3kg빼고 시작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절로 살이 빠지더라. 일상까지 잠식될 정도로 감정의 소용돌이가 큰 작품이 흔치 않은데, 이번에 만났다.

시나리오를 받고 어느 정도 예상했을 텐데, 그럼에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처음엔 고사했다. 최근 무거운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벼운 캐릭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두 달 뒤 감독과 작가가 장문의 편지를 써 보내서 거기에 넘어갔다.

어떤 설득에 마음이 동했나?

“선배님이 연기하는 ‘남중도’를 꼭 보고 싶습니다.”

작품이 끝나면 뭘 가장 하고 싶은가?

여행을 가고 싶긴 한데, 곧바로 또 다음 작품에 들어간다. 넷플릭스 작품인데,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쓰고 민홍남 감독이 연출한 <선산>이다. 스릴러 장르고.

“작품 의뢰가 들어오면 다 한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그것도 자신감에서 나올 수 있는 말 아닐까. 사실 하고 싶어도 망설이는 배우가 있지 않나?

감히 그럴 순 없고, 배우는 선택을 당하는 입장이니 기회를 준 것에 너무 감사하다. 요즘은 제안이 들어오는 작품이 비교적 많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하는 입장이 됐다. 그래서 고민도 많다.

과거 <올레>, <썬키스 패밀리> 등에서 유머러스한 연기를 했지만, 중년 박희순 버전의 코믹물이나 애드리브 연기도 보고 싶다. 평소 말할 때 순발력이나 위트도 남다르더라.

개인적으로 코믹 장르를 좋아한다. 이번에도 코미디나 잔잔한 드라마 를 하고 싶었는데, 기다려도 그런 역할은 안 들어온다.

본인이 생각해도 진짜 잘 살린 애드리브는?

영화 <작전>에서 “오케이! 거기까지!” 원래는 한 번 나오는 대사인데, 극 중에서 수십 번 했다.

박희순을 검색하면 여전히 <마이 네임>이 가장 많이 뜨더라. 한 이미지가 강하게 박히면 장애물이 되진 않나?

막 시작하는 20대 배우가 아니니, 지금 나이에 인생 캐릭터를 만나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동안 보스 역할을 많이 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보스 역은?

아무래도 <마이 네임>이 아닐지. 강한 이미지의 보스는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고, 그건 다른 배우들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이 네임>의 ‘최무진’은 세지만 여린 보스라 나랑 잘 맞았다. 나와 접점이 있는 지점을 극대화해 연기했다. 예를 들면 “나는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는데, 왜 배신을 당하는 걸까”라는 대사를 치는 시퀀스에서 다른 사람이 연기를 했다면 더 화나고 울분에 찬 이미지일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나를 이입하다 보니 오히려 눈물을 흘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술을 마시는 나약한 캐릭터가 됐다.

평소 그런 상황에서 무너지는 성향인가?

완전 무너진다. 마음이 여리다.(웃음)

필모그래피를 언급할 때마다 ‘흥행작이 없다’는 프레임을 스스로 씌우시는 것 같더라.

<마녀>, <세븐데이즈> 등 흥행작도 꽤 있는데 말이다. 프레임이 생길 수밖에 없다.(웃음) 흔히 흥행이라고 하면 몇천만을 이야기하지 않나. 다들 천만을 너무 구멍가게 이야기하듯 말하는데, 그 잣대에서 보면 보잘것없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환경에서는 사실 크게 망한 작품은 아니긴 하다. 여러 장르를 경험해보고 싶었고, 캐릭터가 좋으면 저예산 작품도 가리지 않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이젠 상업적인 면도 봐야 된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아니,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가 바라는 캐릭터나 작품이 아니면 선택하기가 망설여지더라. 그런데 이제 망설이지 않을 거다.(웃음)

30여년간 꾸준히 한 우물을 파왔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그런 게 있다면?

내가 의도한 대로 관객들이 연기를 받아들일 때 희열감을 느낀다. 그런 분이 많아 흥행이 되면 더 좋고.(웃음)

의외로 야심가다.

천만 배우 꿈이 없는 배우가 어디 있겠나. 그런데 그걸 좇다 보면 손에 쥘 수 없더라. 늘 최선을 다하다 어느 순간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명예나 상도 따라오는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나이 드니까 많이 내려놓게 됐다고 하던데.

젊은 혈기에는 이 작품에서 뭔가를 해내고 싶었는데, 지금은 작품에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내 위치를 잘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남의 것 이라고 생각하면 그 선을 넘지 않고, 내게 주어져도 내 것이 아니다 싶으면 남에게 주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다.

반대로, 버릴 수 없는 고집 같은 것도 있나?

작품을 시작할 때 감독, 작가와 이야기한 부분이 나중에 어긋났을 땐 견디기 힘들더라.

터틀넥 톱과 블랙 코트,
레이스업 부츠 모두 Prada,
다크 브라운 팬츠 Ferragamo.

박희순 하면 목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배우에겐 목소리도 재능 아닌가?

장단점이 있다. 내 목소리를 좋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좋게 언급해줘서 자신감이 조금 붙었다. 오히려 이 목소리 때문에 선이 굵은 역할이 많이 들어오지 않나 싶다. 실제로 난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다.

연극부터 OTT까지 연기를 할 수 있는 무대는 모두 섭렵했다. 최근에는 OTT 작품을 많이 하고 있는데, 어떤가?

OTT가 좋더라. 영화나 TV는 숫자 놀음이지 않나. TV는 시청률 소수점까지 따지고, 영화는 개봉 직후 관객 수로 흥행이 바로 판명되니 작품 공개 첫날부터 스트레스다. 반면 OTT는 ‘작품 하나 끝마쳤다’는 기분만 든다.

<마이 네임>의 인기는 언제 실감했나?

늘어나는 팔로워를 보고 체감했다. 그전에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6000명이었는 데, 지금은 40만이다. 해외 팬도 늘었다.

그러게. 댓글을 보니 외국어가 다양하더라.

가끔 긴 댓글은 번역해서 읽는다. 대체 뭐라고 쓴 건지.

어떤 말이 많던가?

‘섹시’가 가장 많더라.(웃음)

요즘 아이돌 못지않은 삶을 산다. 종종 인스타 라이브나 V라이브도 켜던데.

적성에 맞는 것 같다. 편하게 유머를 던질 수도 있고, 팬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젊은 팬들이 박희순 씨의 과거 작품을 모두 챙겨 보는 ‘도장깨기’ 를 하더라. ‘최무진 순례자’ 같은 말이 있을 정도인데, 과거 작품이 재조명되는 기분이 어떤가?

팬들이 극장을 대관해 과거 작품을 상영하더라. <우리 집에 왜 왔니>와 <맨발의 꿈> 두 작품을 몇 달 전에 상영했다. <맨발의 꿈>을 상영할 때 찾아가 인사도 나누고 관람도 했다. 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이라는 생각이 들어 뭉클하더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겠다. 필모그래피를 돌이켜볼 때 떠오르는 단어나 장면이 있나?

진정성. 악역이든 선한 역할이든 박희순의 심성을 표현할 때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모든 작품에 나를 투영하려고 노력하지만, 톱니바퀴처럼 맞을 때가 있다. 아주 절묘하게 딱 맞춰질 때가 있는데, 계속 진정성을 갖고 내면을 투영할 때였다.

에디터 이도연 사진 강혜원 헤어 박창대 메이크업 최수일 스타일링 권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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