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황홀한 순간 뒤에 오는 찌질한 민낯.
“네가 변해야 모든 게 변한다“
“돌잔치 때 넥타이랑 정장 양말만 잘 챙겨.” 아이 돌잔치를 앞둔 몇 주 전부터 아내가 신신당부했지만, 건성으로 대답하고 챙기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육아휴직을 개시하기까지 회사 일을 마무리하느라 바빴고, 휴직 뒤에는 육아를 전담하느라 매일매일 그로기 상태가 되어 뻗었다. 한편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는 꼬박꼬박 치러 갔으니, 변명이 맞긴 하다. 실은 무심했다. 결국 돌잔치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 차 안에서 아내와 다투고 말았다. 간단한 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돌잔치에 관한 모든 걸 준비한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잘못을 빨리 인정했으면 이렇게 글 쓸 일도 없을 텐데, 못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깟 양말 하나 좀 내 마음대로 신게 해줘. 왜 이 것까지 간섭해?” 육아휴직을 하며 다짐한 게 세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 때문에 깨진 순간이었다. 아내에게 화내지 않기, 아이에게 화내지 않기, 스스로에게 화내지 않기. 자정 무렵 다툼 막바지에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했고, 너무 피곤해진 우리는 금세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영문도 모를 아이가 먼
저 깼다. 아내가 늦잠을 잘 수 있도록 나는 유아차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일요일의 청계천은 어제 다툼이 가소로울 정도로 평화로웠고, 공기도 모처럼 깨끗하고 상쾌했다. 마트에서 장만 보고 오려 했는데, 아까운 날씨라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도 좋은데, 근처에서 간단히 ‘아점’이라도 먹을까?” 우리는 에스프레소 바에 들러 음료를 한 잔씩 주문했다. “네가 변해야 모든 게 변한다(Everything changes when you change).” 에스프레소 바 유리창에 붙은 문구를 읽으며 ‘현타’가 왔다. 작가이자 연설가 짐 론(Jim Rohn)의 말이란다. 우리 부부의 싸움에는 패턴이 있다. 갈등 상황에서 둘 다 서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인데, 매번 내 말이 엇나간다. 후반부에 이르면 뿌옇던 게 또렷이 보인다. 그건 바로 내 잘못이다. 빳빳한 재질의 새 검정 양말 하나만 잘 챙기면 됐는데. 나부터 변해야 하는데. 머쓱해진 나는 짐 론의 문장을 보며 다시 용서를 구했고, 우리는 다행히 다툰 뒤 24시간 안에 화해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이, 특히 가족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너무 익숙해졌다고 느낀 나머지 상대에게 나의 민낯을 보이기 때문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부족한 모습을 비추고, 심지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나면 자괴감과 함께 미안함이 겹쳐 두 배로 괴롭다. 이런 최악의 나까지 빠르게 수용하고, 잘못한 점을 빠르게 사과하는 태도를 갖춘다면, 그나마 희망이 있다. 역사는 그 모습을 조금씩 바꿀지언정 반복된다. 실수를 망각할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돌잔치를 앞둔 모든 아빠에게 부탁한다. 돌잔치 때 양복을 입어야 한다면 단정한 넥타이와 양말을 꼭 챙길 것. 특히 나처럼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방해도, 뒤늦게 ‘지적질’도 금지다. 요즘도 이따금 아내와 다투며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만은 잃지 않으려 한다. 내가 변해야 집 안 공기가 다시 평화롭게 변한다.
_손현(콘텐츠 매니저, 작가)
“펀치 드렁크 러브”
그녀는 장거리 러너 못지않았고, 나는 단거리 스프린터에 가까웠다. 서로 휘감은 침대 위가 아닌, 술자리 스타일을 굳이 말하자면 그랬다. 친구의 소개로 서너 번 만나 사귄 그 사람은 술을 좋아했다. 사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썩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우리는 자주 만났는데, 각자 일을 마치고 느지막한 시간에 만나 뭘 해야 하나 고민하거나 방황하지 않아도 됐다. 허기지는 날엔 맛있고 푸짐한 안주를 전제로, 그렇지 않으면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술을 마셨다. 어떤 날은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술집 분위기에 끌려 괜히 계획을 바꿨다. 단정하고 지적인 인상의 그녀는 술을 마시고 취기에 젖으면 위트가 넘쳤고, 보기 좋게 씩씩해졌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당시 내 기준으로는) 그녀는 실로 술에 강했다. 광고를 찍어도 손색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을 맛깔나게 마셨다. 서서히 달궈진 흥은 올림픽 성화처럼 몇 시간이고 활활 타올라 그날 가게 영수증이 서너 장 모일 때까지 대차게 마셨고, 가게 영업이 종료되어 갈 데가 없어야 무르익은 술자리를 끝내곤 했다. 물론 그녀도 취하기는 했지만, 정신줄을 놓거나 후회하며 ‘이불킥’을 하는 실수를 한 건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라면 나의 음주 페이스가 그녀와 너무 달랐다는 사실이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술자리 지구력이 부족했다. 처음부터 ‘오버’해 마구 달리기(마시기) 시작하면, 100m 종목 스프린터가 온 힘을 다해 결승선을 통과한 뒤 대자로 뻗는 것처럼 나도 금세 뻗어버렸다. 그게 아니면, 적당히 마시고 버티며 페이스를 잘 유지하다가도 자정 즈음이면 어김없이 고개가 기역 자로 꺾였다.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날 보며 그녀는 눈을 얇게 뜨고 핀잔을 주거나 토라졌다. “무슨 남자가 그
렇게 약해?” 이 말은 침대 밖에서도 그렇게 자존심을 후벼 팠다. 그럼에도 그녀에 대한 애정이 더 컸다. 다음 날 일정이 걱정되는데도, 자꾸 길어지는 술자리가 문득 벌칙처럼 느껴짐에도, 솔직히 피곤해 죽을 것 같아도 내색하지않고 그녀가 주도하는 음주 데이트를 선뜻 따랐다. 하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툭하면 만취해 꼴사나운 모습을 들키거나, 횡설수설 아차 싶은 말을 하거나, 꾸벅꾸벅 졸다 어묵 전골에 코를 박는 건 늘 내 쪽이었다. 왠지 지는 기분이었다. 넉다운을 당할 걸 알면서도 챔피언에게 달려들어 헛심을 쏟는 거랄까. 정신이 뒤죽박죽인 채 저지른 실수 탓에 싹싹 빌거나 그녀를 달래기 위해 반성문을 쓴 적도 있다. 연인 관계에 술 궁합이 중요하다는 걸 그즈음 확실히 깨달았다. 뻔한 이야기처럼,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어느 날 그녀와 헤어졌다. 맞지 않는 술 궁합이 원인은 아니었다. 어쨌든 관계가 끝난 직후 나는 앓아누웠다. 지독한 이별 후유증이라기보다 공교롭게도 그 타이밍에 술병이 났다. 펀치 드렁크처럼 지속적인 음주 데이트로 쌓인 피로와 충격이 곪아 터졌을 것이다. 글쎄, 낭만적으로 포장한다면 이 또한 사랑이 남긴 후유증이라 할 수는 있겠다. 어쨌든 사랑니를 뺀 것처럼 아팠는데, 사실 그보다는 마음이 더 욱신거렸다. 술에 취해 의자에 반쯤 고꾸라져 침 흘리며 곯아떨어진 허약한 모습으로 그녀의 기억에 내가 박제될 걸 생각하니, 전날 진탕 마신 것도 아닌데 속이 쓰라리고 몹시 아팠다.
_우영현(브랜드 콘텐츠 제작자)
“첫사랑이었다”
“너무 힘들어서요.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 어떻게 왔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말을 잇지 못하고 오열했다. 겨우 울음을 그치고 말을 이었다. “그녀를 사랑하는데 왜 계속 못되게 행동할까요.” 이별 후 정신과를 찾은 20대 청년이 측은해 보였는지, 의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수능 이후 그 친구는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저는 의대로 왔죠. 그때부터 자주 싸웠어요. 혹시 연인 주변에 본인이 생각해도 멋진 이성이 많나요?” 허를 찌른 질문이었다. 사실 그랬다. 취업에 1년, 2년 실패할 즈음 여자친구는 야간 MBA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루는 수업 중인 그녀를 기다렸다. 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나오는 그녀를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주차장에는 검은색 세단이 즐비했고, 대기업 임직원과 벤처 기업 대표로 보이는 이들이 자연스레 차량으로 향했다. 나를 발견한 여자친구는 환한 표정으로 나에게 안겼지만, 뚜벅이 취준생인 나는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멀끔하게 생긴 녀석이 운전석 창문을 열고 말했다. “두 분 교문까지 태워다드릴까요?” 보통은 신이 큐피드의 화살을 쏘는데, 내 마음엔 9피트의 화살이 꽂혔다. 화살은 그들이 쏜 게 아니라, 내 자격지심이 스스로에게 쏜 것이었다. 그날부터였다. 작은 것 하나에도 여자친구에게 퉁명스럽게 대했고, 조금만 연락이 늦으면 의심했다. 어느 날 회식으로 술이 거나하게 취한 그녀는 돌아가는 지하철이라며 먼저 자라고 말했다. 괜스레 재우는 것 같은 느낌에 집 근처에서 얼굴을 보자고 했다. 그녀는 반색하며 집으로 왔다. 해결되지 않는 찝찝함에 결국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왜 이렇게 늦었냐, 공부하는 대학원에서 무슨 회식을 이렇게 오래 하냐, 술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마셨냐.” 사실 여기까지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그다음 말을 내뱉기 전까지는. “너 혹시 환승하려 하냐?” 이 말은 그녀에게 여명 808이었나 보다. 그녀는 곧바로 집
으로 돌아갔고, 밤새 카톡으로 싸웠다. 둘 다 취업이 2년째 실패하던 시기라 예민함은 극도로 치달았다. 욕설이 아닐 뿐 상처가 되는 말을 주고받았다.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겨서라도 사랑을 이어가겠다는 멍청한 생각을 했다. 결국 싸움에서 이기고 사랑을 잃었다. 의사는 그런 심리가 잘못된 사랑 확인 방식이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모진 말을 해도 연인이 떠나지 않는 것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나쁜 방식. 자신이 의
대에 진학하자 연인이 보인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고도 말했다. 사랑을 하는 모든 이가 그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데 남자들은 이 부분이 서툴고, 연인 주변에 나보다 뛰어난 이성이 등장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고. 민낯이
드러난 기분에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한 번이라도 있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당장은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널 사랑하고, 취업 후에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다고.”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의사는 이제 그녀를 놓아주라고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 사귄 이가 첫사랑이 아니라 도저히 내가 잡을 수 없는 누군가와 이별했을 때, 그가 내 인생에 첫사랑으로 남는다는 것을.
_오창석(시사평론가, 작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아마 안 될 거야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분한 안상구가 “추억은 가슴에 묻고 지나간 버스에는 미련을 버려”라고 말했건만, 싸이월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했 다. 그래서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의 날벼락인가 싶어서. 오픈 당일 우사인 볼트의 발처럼 손가락을 빠르게 놀려 아이디를 찾아 접속한 뒤 내 미니홈피가 비공개 상태임을 확인했다. 나의 흑역사는 나만의 것이라고. 그렇게 평정심을 되찾은 뒤 산보하듯 내가 한때 운영했다는 미니홈피를 둘러봤다. 그리고 그곳에서 잊고 있던 지난날과 대면했다. ‘Me and You and Everyone’이라는 폴더명을 보고 그것이 과거에 만났던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 전용 폴더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폴더는 비어 있었다. 이름은 있지만 내용은 없는 지난날이 거기 있었다. ‘나와 너와 우리’가 공유할 수 없는 현재를 상징하듯 그랬다. 물론 애석함 같은 건 없었다. 다만 나름대로 충만한 애정을 품고 보낸 지난 시절을 조우하는 기분이 묘한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그만 헤어져.” 그녀가 말했다. 아니, 너는 비빔밥 집에서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이유를 물었다. 달래도 봤다.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고도 해봤다. 그런데 솔직히 이유를 모르겠더라. 언제나 너에게 최선을 다했고, 널 위해 희생했고, 배려했는데, 이건 배신이야, 배신!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기도 하고, 잉크가 물에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것 같기도 하고, 좀처럼 헤어질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슬픔의 끝에서 파도처럼 분노가 밀려왔고, 분노에 휩쓸려 나가다 보면 망망대해 같은 외로움이 펼쳐졌다.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를 덧없이 듣다 보면 절로 눈물이 났고, 김동률이 부른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들으면서 막연한 희망을 품고 마음속으로 재회하는 드라마를 거듭 돌려봤다. 그러다 결국 그녀가 마음을 돌렸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 지내냐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그런데 이 노래가 이별 후 재회하는 노래였던가? 그걸 잘 몰랐기 때문인지 그 뒤로 우린 세 번 더 헤어졌고, 다섯 번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짜 이별을 했다. 이별을 선언하는 건 유죄판결 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통보받는 쪽의 마음이란 실형 선고를 받는 것과도 같다. 사랑도, 이별도 쌍방이 아니다. 누군가 의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에서 먼저 끝날 수도 있 는 것이다. 솔직히 다섯 번의 이별을 통보받는 과정에서 내가 뭘 잘못했는 지 모르고 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를 잘못해서 이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고 싶었던 건 나 역시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면증을 겪으며 삶이 피폐해졌다. 절규에 가까운 언어를 싸이월드에 휘갈기듯 썼다. 알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나와 일촌이라는 사실을, 그녀도 볼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 고 다시 돌아와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불면증을 겪으며 끝내 다섯 번째에 헤어질 결심을 한 건 다섯 번째 이별 통보를 받은 그날 밤 너무 잠을 잘 잤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이별 통보를 받고 영문도 모르는 사과를 하는 순간부터 나도 그녀도 서로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우리 관계에 선명한 금이 가 있다는 사실을 지켜볼 뿐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봐야 부질없다는 속설을 신뢰하게 만드는 사례를 쌓고 쌓았다. 그리고 아직도 모르겠다. ‘다시 사랑 한다 말할까’는 이별한 연인이 재회를 꿈꾸는 노래였을까? 그렇지만 아마 안될 거야. 안타깝지만 다들 그렇게 이별한다. 이별했다.
_민용준(영화 저널리스트, 대중문화 칼럼니스트)